산/산행..

거창 금원산1,352M ~~~기백산1,331M(08년팔월스물네째날)

청산리 벽계수 2008. 8. 24. 22:53

거창의 산

금원산~기백산

검은 산과 흰 산의 거창한 만남

금원산자연휴양림~유안청계곡~금원산~기백산~금원산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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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의 말을 듣고 싶었다. 다름 아닌 금원, 기백의 말을 듣고 싶었다. 아직 그 날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날 금원,기백의 하늘은 눈부셨다. 2005년 11월 금원, 기백, 거망, 황석산 취재차 그곳에 갔다. 웅장하게 솟은 산세와 푸른 하늘은 시선을 한없이 먼 곳까지 데려 갔다. 산행하기에 축복 받은 날이었다. 허나 어찌된 일인지 숨을 쉴 수 없었다. 하늘은 빙빙 돌고 가을 햇살은 가시마냥 따가웠다. 결국 입산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취재진을 보내고 홀로 산을 내려왔다.

   체온은 4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와 병원 응급실로 가야만 했다. 구차한 사연은 지난 활자 속에 묻어 두었다(2006. 2. 심마니의 산 '독버섯을 먹다'). 당시 몸 상태로 보아 예정된 수순이었으나, 내게 금원, 기백은 항상 남겨진 산이었다. 두고 온 것을 찾으러 간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거창으로 간다.

   구름을 머금은 거창 하늘이 망설인다. 결정했다는 듯 빗방울을 뿌리다가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금새 거둬들인다. 그렇게 맘 바꾸길 수차례, 취재진의 발걸음도 함께 망설이다 결국 금원산자연휴양림에 배낭을 푼다. 평일 휴양림은 조용함을 지나 적막함 가운데에 서있다. 200명이 먹고 떠들 수 있는 콘도식 복합산막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일까? 어둠이 차분하다.

   날이 밝아도 어제와 같은 하늘이다. 허나 유안청계곡은 산꾼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망설임은 흘려보내고 산행을 택한다. 유안청계곡은 금원산이 간직한 첫번째 보물로 조선시대 유생들이 지방향시를 목표로 수련했던 서당격인, 유안청이 있어서 이름이 유래한다. 이태가 쓴 <남부군>의 '기백산 북쪽 기슭 어느 무명 골짜기에 이르러 오백여명의 남부군들이 남녀 모두 부끄럼도 모르고 옥 같은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알몸으로 목욕했다'는 곳이 바로 유안청계곡이다.

   한국전쟁 말미 지리산에선 빨치산 토벌작전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자 남부군은 백두대간을 따라 북으로 이동했다. 허나 추풍령에서 퇴로가 막혀 지리산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덕유산으로 들어갔다. 그 중 일부는 남덕유산 지능을 따라 월봉산과 금원산까지 숨어들었다. 이 빨치산들은 사선대 전투에서 괴멸되었으나, 거창은 빨치산 외에도 전쟁의 흉터가 깊게 남은 곳이다.

   국군에 의해 자행된 거창양민학살사건이 그것이다. 두만강을 눈앞에 두었던 국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뒤바뀐다. 이 소식에 기세가 오른 후방의 빨치산은 활발한 게릴라전을 벌인다. 1950년 12월에는 거창 신원면을 공격하여 경찰과 의용대원 50여명을 사살, 신원면 일대를 해방구로 만들었다.

   1951년 2월 빨치산의 수는 이미 4만에 육박했고 중공군에 밀려 미군이 후퇴하자 빨치산의 공격도 더 적극적인 전술로 바뀌었다. 이에 전방과 후방에서 위기를 맞은 미군과 이승만 정부는 대대적인 토벌을 위해 작전에 들어간다. 지침은 '작전지역의 모든 사람을 총살하고 건물은 소각하라'는 견벽청야작전이었다.

   국군은 신원면 와룡마을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 준다며 탄량골로 몰아넣고 군경 가족은 나오게 한 다음 일제 사격을 해서 100여 명을 죽였다. 청연마을에서도 70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으며 신원면의 덕산, 대현, 중유리 주민 역시 박산골짜기로 몰아넣고 죽였다. 동시에 이들의 집에 불을 질러, 814가구 1585채가 불타고 719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의가 노약자나 부녀자였으며 학살된 사람들은 솔가지로 덮어 불태웠다.

   마침 올해 5월 29일, 거창양민학살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지 8년 만에 대법원 최종판결이 있었다. 그 결과 '소송을 낸 시점에 이미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유족들은 20만원씩의 국가보상을 요구했지만 사건책임자들을 51년 12월 군법회의를 통해 무기징역 등을 선고하였으며, 그 후 3년이 지난 54년까지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단돈 20만원 받기위해 8년 동안 소송에 목멘 것은 아니건만, 법은 산 너머 먼 곳에 있다.

   빨치산도 반한 유안청계곡

   서둘러 유안청계곡을 오른다. 매끄러운 자연 반석 위를 투명한 물줄기가 흐른다. 계곡을 둘러싼 숲은 중용의 미덕을 알고 있다. 지나치게 잎을 뻗어 계곡이 지저분해 보이거나, 한껏 움츠려 계곡이 허전해 보이지 않도록 적당히 그 푸름을 드러낸다. 유안청계곡은 조화로움의 이치를 알고 있는 게다.

   크고 작은 소들이 이어진다. 그 속에서 올챙이들이 볼록 튀어나온 배를 흔들며 바삐 헤엄친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밝은 표정의 계곡이다. 그래서 빨치산도 불안한 맘을 잠시 내려두고 이곳에 풍덩 뛰어들었을 터다. 이념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안아주었던 금원산이다. 결국 내게도 건강한 몸으로 다시 오라고 매몰차게 내려보낸 것은 아닐까. 산의 높이는 알 수 있을지언정 산의 깊이는 알 수 없다.

   유안청2폭포는 자연 미끄럼틀을 보는 듯하다. 80미터는 될 법한 매끈한 슬랩을 타고 물이 흘러내린다. 지금은 물살이 왼편에 치우쳐 있지만 수량이 많을 땐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하겠다. 얼마 안가 나무 사이에 숨은 폭포를 만났다. 유안청1폭포다. 2폭포에 비하면 흔히 마주칠 법한 작은 폭포지만 나름 수더분한 맛이 있다.

   계곡을 따라 휴양림에서 표기해둔 3코스로 오른다. 임도를 따르기도 하고 가로지르기도 한다. 임도 언저리에 거창 119구조대 차가 세워져있다. 누군가 사고라도 났을까 귀를 기울여 보지만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쉴 틈 없는 사면 오름길가에 물바가지가 있다. 들여다보니 흘러나온 물이 살짝 고여 있다. 수통을 채우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목을 축이기엔 부족함 없다. 알뜰한 샘이다. 머리를 비운 채 더 오르자 또 샘터다. 이끼 낀 바위가 둘러있어 보기에도 맛있어 보인다. 전보다 수량도 더 많다. 아래 계곡에서 수낭까지 채우고 온 김재권씨가 안타까워한다. GPS를 보니 고도 1236미터 지점이다. 5분을 더 오르자 주능선이다. 시끌벅적한 주황색 옷을 입은 이들이 안내판 교체작업 중이다. 거창 119구조대원들이다. "알루미늄으로 세운 안내판이 산과 안 어울린다"고 항의하는 등산인들이 있어 철거작업을 하는 중이란다. 이들의 땀방울이 고맙다.

   주능선 안부에서 잠깐 오르니 동봉이다. 구름 속이라 보이는 건 구름뿐이다. 10분을 더 가니 금원산 정상이다. 금원산의 본디 이름은 검은산이다. 옛 위천현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데서 연유한다. 더불어 황금원숭이 전설이 금원산 이름과 닿아있다는 설도 있다. 옛날 이 산에 살던 금빛 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마을에 피해를 줘 한 도승이 녀석을 잡아 바위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표지석이 있으나 자리가 좁고 나무에 싸여있어 시원한 맛은 없다. 정상다운 맛은 동봉이 더 낫다.

   문득 숲 속에서 들리는 새 소리, 음색이 어찌나 고운지 절로 미소가 번지게 만든다. 일행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조망 대신 내주는 금원의 선물이다.

   왔던 길을 거슬러 기백으로 간다. 금원과 기백을 잇는 1000미터 대의 능선은 오르내림이 적어 수월하게 간다. 빽빽한 나무 덕택에 조망은 없으나 답답하지 않다. 구름에 젖은 촉촉한 공기와 싱싱한 수풀 내음 탓이다. 들이마실수록 내장이 조금씩 정화되는 듯한 착각, 산행은 유쾌한 수행이다.

   기백이 가까워질수록 산이 우락부락해진다. 순백의 화강암이 곳곳에 솟았다. 순간 드러나는 바위 전망대. 부끄러움을 타는 금원과 달리 기백은 시원시원하다. 금원이 유안청계곡과 지재미골의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여성적인 산이라면, 기백은 시원한 능선의 산세가 돋보이는 남성적인 산이다. 나아가 금원산은 검은 음(陰)이고 기백산은 흰 양(陽)이다. 그래서 금원과 기백은 따로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은 서로 기대 살며 조화를 이룬 산이다. 산행도 금원에서 계곡을 맛보고 기백에서 능선을 맛보는 코스가 조화롭다.

   험하다 싶은 암릉엔 우회로가 나있다. 암릉은 아찔한 구간이 곳곳에 있으나 고정로프나 시설물 없이 자연 그대로다. 암릉의 절정은 누룩덤, 누룩을 쌓아 놓은 형상이다. 누룩덤은 기백산의 백미다. 거대한 돌탑마냥 겹쳐진 바위의 모습도 그렇지만,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은 묵은 체증까지 날려버린다. 서쪽 발아래엔 용추계곡이, 맞은편엔 거망산과 황석산이 살고 있다. 정상엔 우람한 표지석이 기백 있게 서있다.

   기백산의 옛 이름은 지우산, '비의 징조를 안다'는 뜻이다. 기백산의 구름이나 안개 등의 기상변화를 보고 거창 사람들이 날씨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지우산에서 날씨를 가늠한다. 대충 봐도 곧 큰비가 올 거란 걸 알 수 있다. 사람의 앞날도 산을 통해 예측하면 좋으련만, 산은 침묵으로 말할 뿐이다.

능선 따라 난 하산길에 몸을 맡긴다. 3년 전 내가 여기 두고 온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없다. 산행을 마무리 못한 아쉬움이 산을 붙잡고 있었던 게다. 한참 내려서자 휴양림이다. 후련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산행길잡이

   금원산자연휴양림-(1시간)-유안청1폭포-(1시간30분)-주능선 안부-(10분)-동봉-(10분)-금원산-(30분)-임도-(20분)-시흥골 갈림길-(1시간)-기백산-(1시간30분)-금원산자연휴양림

   거창의 대표 명산

   거창의 산 중 유명세로 따지면 단연 금원산(1352m)과 기백산(1331m)이 으뜸이다. 수도산과 남덕유산도 유명하지만 국립공원과 대간의 산이란 이미지가 강해, 거창의 명산을 대표하는 것은 단연 금원, 기백이다. 금원, 기백은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줄기에 솟았다. 이 산줄기는 거창과 함양의 경계를 이루며, 월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엔 거망산(1184m)과 황석산(1190m)이 솟아있다. 월봉산을 모산으로 양갈래로 뻗어 마주보고 앉은 황석, 거망과 금원, 기백은 말발굽 형세를 이루고 있어 1박2일 종주코스로 이름 높다.

   거창의 서쪽 경계인 금원, 기백은 금원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한 원점회귀산행지로 좋다. 특히 유안청계곡의 비경을 감안하면 여름 산행지로 무난하다. 자연휴양림을 중심으로 현성산, 금원산, 기백산, 안봉, 조두산 등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 해서 산행은 다양한 코스가 가능하다.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유안청계곡으로 올라 금원산과 기백산을 타고 다시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산행들머리인 휴양림의 고도가 512m이므로 대략 800m만 고도를 높이면 주능선에 닿는다.

   오름길은 유안청1폭포에서 길이 나뉘는데 능선을 타고 동봉으로 오르는 길은 '2코스', 계곡을 타고 주능선에 오르는 길은 '3코스'로 이정표에 적여 있다. 3코스는 경사가 덜 가파르지만 2코스에 비해 20~3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 2~3코스 오름길에선 임도를 몇 번 가로질러 오르며, 3코스엔 작은 샘터가 있어 유용하다. 동봉에서 북쪽으로 250m 떨어진 곳에 금원산 정상이 있다. 정상보다 동봉이 조금 낮지만 정상다운 맛은 더 낫다. 금원에서 기백으로 이어진 능선은 큰 오르내림 없이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주능선에선 조망이 트인 곳은 적지만 반면 자연 그늘이라 여름 산행에 유리하다. 시흥골삼거리를 지나면 마루금이 크게 한번 물결친다. 기백산 정상부에 다가설수록 화강암 더미가 늘어나고 전망 좋은 바위도 마주친다. 암릉구간엔 고정로프가 없어 위험할 수 있으나 우회로가 항상 있어 선택 가능하다. 하산길은 능선을 타고 내려서는 가파른 길이며 조망이나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지루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금원산은 계곡이 좋고, 기백산은 능선이 좋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산인게다. 산행도 금원, 기백 정상을 찍어야 섭섭하지 않다. 산행의 도상거리는 12km, GPS로 확인한 실주행거리는 14.2km다.